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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부흥의 토대를 마련하시여(중)〉 CNC로 지식경제형 경제강국을

피눈물속의 결단, 구호는 최첨단돌파

1995년 4월 29일, 김정일장군님께서 어느 한 공장을 찾으셨을 때의 일이다. 여러가지 제품들이 전시되여있는 홀에 들어서신 장군님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시였다. 보통사람의 눈으로는 무슨 기계인지 알수 없는 2대의 기계설비앞이였다. 《이것이 CNC가 아닌가?》 장군님께서는 첫눈에 CNC기계를 알아보시고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희천련하기계종합공장을 현지지도하시는 김정일장군님(2010년 12월, 조선중앙통신)

첫눈에 알아보신 기계

그 2대의 기계는 《련하기계》개발자들이 설계제작한 CNC줄방전가공반(4축)이였다.

조선에서는 1980년대에 소재운반로보트를 만들어본적이 있다. 장군님께서는 이 성공에 기초하여 CNC공작기계를 만들어낼 구상을 하게 되시고 1992년 7월 김책공업종합대학 연구사를 비롯한 우수한 두뇌진들로 《련하기계》개발집단을 무으시였다.

그때로부터 《련하기계》개발집단은 CNC공작기계개발에 달라붙어 수년동안에 끝내 만들어내였다.

그들은 첨단기계를 만들어낸 크나큰 경사를 소리쳐 자랑하고싶었고 어서빨리 새 기계를 장군님께 보여드리고싶었으나 민족의 대국상을 당한 때인지라 그렇게는 하지 못하였다. 장군님께서 오실 날만을 손꼽아기다리면서 그 기계를 소리없이 세워두고있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그 기계를 첫눈에 알아보신것이다.

개발자들은 감격과 함께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일군들은 물론 극히 제한된 전문가들속에서만 통용되고있는 CNC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부르고계시였다.

프로그람을 입력시킨대로 움직이는 기계의 동작과정을 보시고 장군님께서는 사람들이 이 설비를 보면 다른 나라에서 사온것으로 알지 우리 나라에서 만든것이라고 믿지 않을것이라고 하시면서 못내 만족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후날 이때를 자주 회고하시였다고 한다.

2009년 5월 희천공작기계종합공장을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나는 〈련하〉와 첫 상면하던 때를 잊을수 없습니다. …나는 그때에 〈련하〉제품을 처음 보았소. 우리 사람들이 만들어낸 줄방전가공반을 본 다음부터 나는 결심하였습니다. CNC를 할수 있다고 말입니다.》

1990년대말로 말하면 당장 먹을 쌀이 문제로 되고있었다. CNC라는 말은 현실과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기계공업을 새로운 단계에 올려세우는것을 강성대국건설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로 보시고 기계공업을 갱신하는데서 기본은 CNC화를 전면적으로 실현하는것이라고 보시였다.

1998년 1월, 장군님께서는 얼마 되지 않은 귀한 자금을 모두 현대화에 쓰기로 결심하시고 자강도에 대한 력사적인 현지지도길에 오르시였다.

당시를 추억하시며 장군님께서는 그 돈으로 고난을 겪고있는 인민들을 먹여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앞을 내다보고 귀중한 자금을 CNC화에 돌리기로 결심하였다, 마음속에서는 눈물이 아니라 피눈물이 흘렀다고 말씀하시였다.

계몽과 높은 요구성

여느 공장들에는 《련하기계》들이 들어찬 CNC칸과 낡은 기계들이 있는 재래식기계칸을 함께 두고있다. 이것은 장군님께서 CNC를 모르는 사람들이 빨리 계몽되도록 일부러 두도록 하신것이다.

2006년 2월 장군님께서 현지지도하신 기계공장에도 이러한 대조를 이루는 공간이 있었다.

재래식칸은 몇년전까지 수백명의 로동자들이 새까맣게 앉아서 손로동을 하던 곳이며 CNC칸에서는 로동자들이 조종판앞에 서서 프로그람을 짜넣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판판 다른 두 칸사이를 가리켜 국경선으로 비유하시면서 일군들에게 CNC의 우점을 인식시키시고 CNC칸을 더 늘일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경제전반의 CNC화를 시작할 때 CNC라는 말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였다. 동행한 일군들도 리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군들에 대한 계몽사업을 항상 념두에 두시였다. 그만큼 어렵고 매우 품이 드는 일이였다.

시대가 달라졌기에 로동자들에 대한 콤퓨터교육에 투자를 해야 한다는것, 잘못하면 무직업자가 나올수 있으니 로력관리를 잘해야 한다는것, 콤퓨터망을 지배인, 기사장, 책임비서방에도 련결하여 현장자료들을 볼수 있게 해야 한다는것 등등 그 지시내용은 매우 구체적이였으며 현장 일군들과 나누시는 대화의 심도는 전문가들도 다 헤아릴수 없을 정도였다. 정밀한 연마반만 있으면 《어미기계》를 만들수 있다고 청하는 공장지배인에게 연마반은 공조(空調)체계가 있어야 쓸수 있다시며 공조체계확립을 선행시킬데 대하여 지적하신것을 비롯하여 투자의 선후차도 바로잡군 하시였다.

성과가 뚜렷한 못하는 단위 지배인에게는 용기를 내라고 등을 밀어주시는 한편 천지개벽된 공장을 보시고도 이미 해놓은것을 가지고 만세를 부르면 안된다, 자꾸 갱신, 개조해야지 이것으로 끝내면 이미 이룩한 성과도 무너지고만다고 하시면서 항상 요구성을 높이시였다. 첨단으로부터 최첨단에로 불러일으키시였다.

이러한 과정에 기계공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희천련하기계종합공장에서는 첨단CNC기계가 생겨났다. 2010년 10월에 자동차, 선박, 항공 및 우주공업을 비롯한 여러 분야들에서 필요한 제품생산에 한몫할수 있는 9축선삭가공중심반을 제작하였다. 지금은 이보다 더 높은 단계인 11축복합가공중심반을 제작중이다.

장자강공작기계공장에서는 CNC화의 가장 높은 단계인 무인화를 실현. 기계제품의 가공, 검사, 출하에 이르는 모든 공정이 사람없이 콤퓨터로 조종하고 관리운영하고있다.

장군님께서 2대의 CNC기대를 보시고 온 나라의 CNC화를 결심하신 때로부터 불과 10여년, 기계분야에서뿐만아니라 경공업과 식료가공공업 등 인민경제의 모든 령역에서 CNC화가 촉진되고 나라의 경제가 전반적으로 새로운 경지에 올라섰다.

장군님께서 지피신 CNC열풍으로 하여 조선이 지향하는 지식경제형 경제강국에로의 지름길이 번듯하게 닦아졌다.

(조선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