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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부흥의 토대를 마련하시여(상)〉 최대의 혁명유산, 군력의 강화

다박솔초소가 전하는 비장한 결심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김일성주석님의 뜻을 받드시고 인민들이 남부럽지 않게 잘사는 강성국가를 일떠세우기 위해 온갖 로고와 심혈을 바치시였다. 광명성절에 즈음하여 강성부흥의 토대를 마련하신 장군님의 업적을 전하는 기념글을 3번에 걸쳐 련재한다.

김일성주석님께서 서거하시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새해 첫날, 김정일

장군님께서는 금수산기념궁전에 계시는 주석님께 설인사를 드리신 다음 군부대를 찾으시였다. 후날 세상에 널리 알려진 다박솔초소이다. 대국상이후 장군님의 활동소식은 일체 보도되지 않았다. 이 군부대시찰보도가 처음이였다.

1995년 1월 1일 다박솔초소를 찾으신 김정일장군님

군대를 주력군으로

다박솔군부대시찰로부터 17년, 흐르는 세월속에 병사들은 바뀌였지만 오늘도 이 군부대내에서는 당시의 이야기가 생동하게 전해지고있다.

장군님께서 찾아오신것은 아침 7시 30분. 장군님께서는 매우 수척해지고계셨다고 한다. 장군님을 자기 초소에 모신 영광을 지닌 군인들은 눈물속에 《만세!》를 터쳤다.

장군님께서는 초소의 언덕에서 약 10분동안이나 만경봉방향을 바라보시면서 아무말 없이 사색에 잠기시였다.

이 부대의 군관에 의하면 만경대를 떠나 백두산에서 시작된 주석님의 혁명위업을 총대로 끝까지 완성하리라는 비장한 결심을 다지고계시였다는것을 병사들은 후날에야 알게 되였다고 한다.

당시 지휘성원들에게 있어서도 장군님께서 찾아오신것은 너무도 뜻밖이였다. 군관에 의하면 민족의 어버이를 잃은 슬픔에 잠겨있었던 군인들은 김정일장군님을 절절히 그리며 그이의 신년사를 기다렸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장군님께서 어찌하여 자기 초소를 찾아주셨는지 설인사를 드린 병사도 몰랐다. 조선을 지켜보던 세계도 몰랐다.

장군님께서는 대국상이후 총대로 조국과 혁명, 사회주의의 운명을 지키시려는 비장한 결심과 의지를 지니시고 현 난국을 타개할 구상을 무르익혀오시였다.

당시 우리 나라를 둘러싼 정세는 참으로 엄혹하였다.

쏘련을 비롯한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이 붕괴된것과 민족의 대국상을 기화로 미국은 조선을 군사적으로 위협하는 각종 전쟁연습을 광란적으로 벌렸다.

하여 조선반도에는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팽팽한 정세가 조성되였다.

이와 동시에 제국주의련합세력의 경제봉쇄책동은 극도에 달하였다. 나라의 수많은 공장들이 멎어서고 자연재해까지 겹쳐 경제적난관도 참으로 컸다.

장군님께서는 다박솔초소에서 돌아오신 그날 저녁, 당, 군대, 국가의 책임일군들과 같이하신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인민군대는 주체혁명위업을 수행하는데서 주력군이 되여야 합니다. 인민군대만 강하면 두려울것이 없습니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유산으로 물려주신 내 나라, 내 조국을 이 세상에서 가장 부강하고 살기 좋은 인민의 지상락원으로, 사회주의강국으로 만드는것이 나의 리상이고 결심이라고 말씀하시였다.

《폭열강행군》

장군님께서는 군부대를 찾고 또 찾으시였다. 철령과 1211고지, 오성산과 섬초소에로 《전선강행군》을 이어오시면서 조선인민군을 무적강군으로 키우시였다.

그 과정에 《눈보라강행군》, 《새벽강행군》 등의 말들이 생겼는데 《폭열강행군》이라는 말도 있다.

장군님께서는 공화국창건 60돐을 한달 앞둔 2008년 8월 7일 제891군부대를 찾으시였다.

그해의 삼복철은 류달리 더웠는데 그날은 삼복중에서 제일 더운 날이였다. 온도가 최고로 오르는 한낮에 이곳을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물보라 날리며 시원하게 쏟아내리는 덕수터우에 뙤약볕을 맞으시며 서계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며칠후 이때를 회고하시여 덕수터를 보니 몸을 식히고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평생 그 덕수터를 잊을것 같지 않다고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이렇듯 참기 힘든 더위도, 또 겨울이면 살을 에이는 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전설시찰길을 이어가시였다.

그리하여 핵으로 위협하는 미국의 도전을 물리치시고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수호하시였다.

군력의 강화뿐이 아니였다.

장군님께서는 군대를 혁명의 기둥, 주력군으로 내세워 혁명과 건설을 다그칠데 대한 독창적인 리론을 내놓으시고 경제건설도 동시에 내밀고나가시였다.

청류다리(평양), 평양-향산관광도로, 금강산발전소(당시) 등등 어렵고 힘든 건설대상을 군대가 맡아하도록 하시였다.

오늘도 희천발전소, 만수대거리살림집건설 등에서 군대가 창조하는 새로운 속도와 사업기풍, 사상정신상태는 온 사회에 침투되여 비약과 혁신의 원동력을 낳고있다.

장군님께서는 군대를 튼튼히 다져놓으신데 기초하여 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승리를 안아오시였다. 선군혁명령도로 조국과 혁명, 사회주의를 지키시였으며 오늘은 강성부흥하는 새시대를 안아오시였다.

국내언론들은 장군님께서 물려주신 최대의 혁명유산이 총대라고 지적하고있다.

(조선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