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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마음에 간직된 또 한분의 태양상

눈보라장군의 미소

【평양발 김지영, 정무헌기자】눈보라장군은 영결의 날에도 눈길을 가시였다.

김정일장군님과 영결하는 의식이 28일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엄숙히 거행되였다.(사진 문광선기자)

새벽부터 내린 눈은 그 시각에도 멎지 않고 내려쌓였다. 2011년 12월의 영결식. 강성국가의 위용을 떨치는 2012년 4월의 축전장에 모시기 위해 창작된 김정일장군님의 태양상이 민족의 대국상을 당한 눈물의 바다와 함께 있었다. 너무도 뜻밖에, 너무도 애석하게 서거하신 령도자를 그리며 인민들이 곡성을 터쳤다.

《장군님!》 하고 목메여 부르며 흘리는 눈물에 가식은 없다.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운 시련의 시기를 뚫고 력사상 처음으로 되는 북남수뇌회담이 실현되였을 때 평양의 거리를 달리는 승용차안에 계시던 령도자의 모습을 보아도 눈물을 터뜨린 인민들이다.

김일성주석님의 서거후 적대국들의 봉쇄와 압력에 맞서 나라와 민족의 존엄을 지켜낸 그 나날은 총포성이 없었을뿐 사실상 가렬한 전쟁이였다. 가슴아픈 희생도 없지 않았다. 령도자와 인민은 간난신고를 함께 겪고 승리의 환희도 나누었다. 조선에서 령도자와 인민은 동지이며 전우이다. 상의하달의 관계가 아니다. 준엄한 대결전속에 이 나라의 일심단결은 더욱 굳게 다져졌다.

1994년 7월, 해방의 은인이시며 건국의 어버이이신 김일성주석님을 부르고 또 부르던 영결식의 그 광경이 조선의 수도에서 되풀이되였다. 그것은 야전복차림으로 전선시찰, 현지지도의 강행군길을 이어가신 장군형의 정치가가 그동안에 이룩해놓은 업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화폭이다.

일심단결을 특징으로 하는 조선식 사회주의는 력사의 풍파를 이겨내여 굳건히 고수되였다. 17년전, 눈물을 흘리는 인민들의 모습을 보고 《북조선붕괴론》을 떠들었던 적대국들이 부정할래야 할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설경이 펼쳐진 영결의 날, 연도에 나온 인민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려쌓인 눈을 쳐서 길을 내였다. 차행렬의 통행을 보장하느라 행사가 시작되는 직전까지 자기가 입은 외투나 솜옷을 벗어 도로에 깔았다.

야전복차림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는 태양상의 창작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김정은부위원장의 발기에 의한것이였다.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시작된 영결식은 혼연일체의 정치가 빛나게 계승되는 순간이였다. 추도곡이 장중하게 울리는 가운데 반기를 드리운 기념궁전 정면의 주석님 태양상이 보이는 앞광장을 장군님의 태양상이 연도를 향해 서서히 나갔다. 김정은부위원장께서 장군님의 령구를 모시고 함께 나가시였다.

고난의 행군을 체험한 인민들이 떠올리는 령도자의 모습은 사나운 눈보라를 헤치며 북방의 땅 자강도를 찾아 견인불발의 의지로 난관돌파의 길을 열어나가신 장군의 모습이다. 통곡속에 인민들은 그 영상을 가슴에 아로새겼다. 흰눈이 내리는 평양의 거리를 장군님의 태양상을 모신 령구차행렬이 눈물의 바래움을 받으며 누벼나갔다.

장군님을 부르며 가슴을 치며 통곡한 인민들이 중대보도가 있은 후의 추도기간에 한결같이 그려본 장면이 있다. 《달리는 야전렬차》이다.

장군님께서는 주석님의 전사, 제자로서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2012년을 향한 최후돌격전을 불철주야로 진두지휘하시여 강행군을 이어가시다가 겹쌓인 과로로 하여 야전렬차안에서 순직하시였다.

렬차는 계속 달려야 한다. 조선은 전진해야 하며 한순간도 멈춰서지 말아야 한다. 눈물을 닦고 머리를 들자. 조선의 민심은 그렇게 흐른다. 바로 거기에 김정은부위원장께서 결단하신 조선의 진로가 있다.